캡콤이 바이오하자드도 아니고, 몬스터헌터도 아니고, 달에서 안드로이드 소녀를 등에 업고 다니는 게임을 만들었다. 6년을 끌었다. 두 번이나 발매를 연기했다. 그런데 연기 공지조차 게임 속 소녀 다이애나의 손글씨로 사과하는 트레일러를 만들어 보여줬다. 이쯤 되면 캡콤이 이 게임에 얼마나 미쳐 있는지 짐작이 간다. 4월 17일 출시를 앞둔 프래그마타(Pragmata), 대체 어떤 게임이길래 캡콤이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걸까. 스포일러 없이, 공개된 정보와 개발진 인터뷰만으로 파헤쳐 봤다.
한국인 디렉터가 캡콤에서 벌인 일
프래그마타의 총괄 디렉터는조용희. 한국인이다. 플래티넘 게임즈에서 메탈 기어 라이징 리벤전스 캐릭터 컨셉 아트, 베요네타 2 코스튬 아트, 니어 오토마타 웨폰 디자인을 담당했던 인물이 캡콤으로 옮겨 바이오하자드 RE:3의 아트 디렉터를 맡았고, 이제 디렉터로서 완전 신규 IP를 들고 나왔다.
조용희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SF는 세계관의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일 뿐이고, 이 게임의 진짜 중심은 주인공 휴와 안드로이드 소녀 다이애나의 교감이라고. 그리고 그 덕분에 캡콤 AAA 게임 역사상 최초로 한국어 더빙이 들어갔다. 조 디렉터가 윗선에 가볍게 제안했더니 실제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캡콤에서 한국인 디렉터로서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처음엔 이렇게 큰 기대를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 조용희 디렉터
다이애나는 대체 누구인가
공식 명칭은 D-I-0336-7. 루나필라멘트라는 꿈의 물질로 만들어진 특수 안드로이드다. 외형은 10세 전후의 어린 소녀. 맨발. 헝클어진 금발. 에이리언 2의 뉴트를 떠올리게 하는 디자인이고, 록맨을 모티브로 했다는 추측도 있다. 실제로 손을 뻗는 장면에서 옷이 록 버스터를 연상시키는 형태로 변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용희 디렉터가 강조한 건 다이애나의 성격이다. 호기심이 왕성하고, 축적된 데이터가 부족해서 세상의 모든 것에 순수한 경이로움을 보인다. 그리고 휴가 지어준 다이애나라는 이름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디렉터는 성우 디렉팅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다이애나를 '모에모에 큥!' 같은 캐릭터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성으로서의 귀여움이 아니라, 리얼한 아이의 귀여움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 조용희 디렉터
그래서인지 다이애나의 목소리 연출은 기존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의 소녀 캐릭터와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이건 의도된 설계다.
'안드로이드 딸 키우기'라는 말이 나온 이유
프래그마타의 핵심 구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플레이어는 성인 남성 휴를 조작하고, 다이애나는 휴의 등에 업혀 다닌다. 이동할 때도, 전투할 때도, 탈출할 때도 함께다. 휴는 총을 쏘고, 다이애나는 해킹으로 적의 방어구를 무력화한다. 둘이 힘을 합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다이애나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성장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게임이 진행될수록 다이애나의 새로운 기능이 해금되고, 휴와의 대화도 깊어진다. 탐색이나 진행 방식에 따라 다양한 레어 대화 패턴이 등장하며, 조용희 디렉터는 이에 대해 "플레이어가 감정을 이입하는 쪽은 휴이기 때문에, 다이애나와 친해질수록 애착이 늘어가는 부분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성애에 대한 질문에는 직접적으로 인정했다. 부성애를 구현하고자 노력한 게 맞다고. 다만 결혼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유저도 공감할 수 있도록 스토리를 구성했다고 덧붙였다.
라스트 오브 어스의 조엘과 엘리, 갓 오브 워의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 '전투력이 강한 어른 +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라는 조합은 게임 내러티브의 강력한 공식이다. 프래그마타는 이 공식을 SF라는 옷 위에 입혀 캡콤 특유의 액션으로 풀어냈다.
전투 시스템 - 좌뇌와 우뇌를 동시에 쓴다
프래그마타의 전투는 일반적인 TPS가 아니다. 적을 향해 총만 쏘면 외피가 너무 단단해서 제대로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는다. 먼저 다이애나의 해킹으로 적의 장갑을 무력화하고, 약점이 드러난 틈을 노려 휴가 사격을 가하는 구조다. 해킹은 화면 우측에 나타나는 노드를 한붓그리기 방식으로 이어가는 퍼즐로 진행된다.
핵심은 이 해킹 퍼즐이 전투 중 실시간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적은 계속 공격해오는데, 그 와중에 퍼즐을 풀어야 한다. 좌뇌로 퍼즐을 풀고, 우뇌로 적의 움직임을 읽고 회피해야 하는 셈이다. 체험판 공개 이후 "슈팅 게임을 잘 못하는데 오히려 퍼즐 요소가 들어가니 할 만하다"는 반응부터 "긴장감이 장난 아니다"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무기 시스템
휴가 사용하는 무기는 셸터(거점)에서 루나필라멘트를 이용해 3D 프린트하거나 강화할 수 있다. 공개된 무기만 해도 그립 건, 쇼크웨이브 건, 스테이시스 네트, 차지 피어서 등 다양하다. 새로운 무기와 다이애나의 새로운 기능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도록 레벨 디자인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한다.
캡콤이 6년을 쏟아부은 이유
프래그마타는 2020년 PS5 퓨처 오브 게이밍 컨퍼런스에서 최초 공개됐다. 그 뒤 두 차례 발매 연기. 2023년 6월 이후 2년간 무소식. 보통이면 프로젝트가 엎어진 거라 생각할 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2025년 State of Play에서 살아 돌아왔고, 그해 말 TGA에서 정식 발매일과 체험판을 한꺼번에 공개했다.
개발팀은 캡콤 제1개발부서, 바이오하자드와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를 맡아온 곳이다. SF 세계관의 완성도를 위해 마크로스 시리즈의 카와모리 쇼지 감독에게 감수까지 받았다. 체험판 공개 후 위시리스트 200만, 데모 다운로드 200만을 돌파했고, 성원에 감사한다며 출시일을 오히려 일주일 앞당기는 이례적인 결정까지 했다. 4월 초에는 골드(개발 완료) 승인까지 확인됐다.
항목내용
출시일
2026년 4월 17일 (PC/PS5/Xbox) / 4월 24일 (NS2)
장르
SF 액션 어드벤처 (슈팅 + 해킹 퍼즐)
플레이 타임
메인 스토리 약 10~15시간 / 2회차 요소 있음
한국어
자막 + 더빙 모두 지원 (캡콤 AAA 최초)
디렉터
조용희 (한국인, 바이오하자드 RE:3 아트 디렉터 출신)
SF 감수
카와모리 쇼지 (마크로스 시리즈)
기대해도 되는 이유, 걱정되는 이유
기대 포인트
바이오하자드 리메이크를 만들던 팀의 노하우가 녹아 있다. 10~15시간이라는 적당한 볼륨에 2회차 요소까지 있으니,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처럼 반복 플레이의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 캡콤 사내 QA에서도 끝까지 재밌다는 평이 나온다고 디렉터가 직접 자신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한국어 더빙으로 다이애나의 감정선에 완전히 빠져들 수 있다.
우려 포인트
슈팅과 퍼즐을 동시에 진행하는 구조가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해질 수 있다는 지적은 체험판 때부터 있었다. 디렉터도 이걸 해결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인정한 만큼, 실제 본편에서 어떻게 해결했는지가 관건이다. 또한 캡콤의 완전 신규 IP라서 기존 팬층이 없다는 점도 흥행 면에서 변수다.
결론 - 왜 '안드로이드 딸 키우기'인가
프래그마타는 결국 관계의 게임이다. SF도, 슈팅도, 퍼즐도 전부 휴와 다이애나라는 두 존재의 유대를 깊게 만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데이터가 부족해서 세상 모든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안드로이드 소녀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등에 업고, 함께 싸우고, 함께 성장하며 차가운 달에서 지구로 돌아가는 여정. 그걸 캡콤이 RE 엔진의 기술력과 바이오하자드 팀의 제작 역량으로 만들었다.
캡콤이 미친 짓을 한 게 아니다. 아주 정확하게 계산된 도박을 한 것이다. 4월 17일, 다이애나를 처음 등에 업는 순간 그 도박의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